근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프랑스 드레퓌스 대의혹 사건은 군정이 사회 인심을 부패하게 만드는 뚜렷한 예증이다.
보라, 그 재판의 모호함과 그 처분의 난폭함, 그 사이에 일어난 유언비어의 기괴하고 추악함을.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거의 프랑스 육군 내부가 오직 악인과 치한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었다. 의심할 것도 없다. 군대의 조직은 악인으로 하여금 그 흉포함을 마음껏 부리게 하는 것이 다른 사회보다 용이하며, 정의로운 인물을 치한과 다름없게 만드는 해악 또한 다른 사회에 비해 더욱 크다. 왜냐하면 육군 내부는 ××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위권의 세계이기 때문이며, 계급의 세계이기 때문이며, 복종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도리나 덕의가 이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저 사법권의 독립이 완전하지 않은 동양 제국을 제외하고는, 이와 같이 횡포한 재판과 횡포한 선고는 육군 내부가 아니면, 군법회의가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바이다.
그렇다, 이것은 실로 보통 법원이 결코 하지 않는 바이다. 보통 민법과 형법이 결코 허용하지 않는 바이다.
그런데도 씩씩한 수만 명의 용사들 중, 단 한 명도 나서서 드레퓌스를 위해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 재심을 촉구하는 자가 없었다. 모두가 말하기를, 차라리 한 명의 무고한 자를 죽일지언정 육군의 치욕을 은폐하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에밀 졸라가 궐연히 일어났다. 그의 불꽃 같고 꽃 같은 대문자는 뚝뚝 떨어지는 뜨거운 피를 프랑스 4천만 국민의 머리 위에 쏟아부은 것이다.
당시 만약 졸라를 침묵하게 내버려 두었더라면, 프랑스 군인들은 끝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드레퓌스의 재심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수치심 없고 의리 없고 용기 없음은 실로 시정의 한 문사만도 못했다. 그 군인적 훈련이라는 것이 여기서 털끝만큼의 가치라도 있는 것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다면 천만 명이라도 내가 가겠노라고 하셨다. 이 의기와 정신을 오직 문사 졸라에게서만 보고 당당한 군인들에게서 보지 못함은 어찌 된 일인가.
혹자는 말하기를, 상관에게 항거하는 것은 군인이 해서는 안 될 일이며 또한 할 수도 없는 일이라 한다. 드레퓌스 사건 당시 프랑스 군인들의 맹종은 아직 그들의 도심 결핍을 증명하기에 부족하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source: https://www.aozora.gr.jp/cards/000261/files/2946_207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