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만화 『체인소 맨』 1부 결말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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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화 『체인소 맨』을 좋아한다. 그 표현이 영화적이고 세련되어서이기도 하지만, 『체인소 맨』은 기본적으로 권위와 권력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서 권력이란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명령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단순한 억압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미셸 푸코는 권력을 누군가가 소유하고 타인에게 행사하는 하나의 실체라기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능한 행위의 장에 작용하는 관계로 이해했다. 권력은 행위를 금지하거나 억누르는 데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무엇을 욕망하고,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며, 어떤 행동을 가능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지까지 생산하고 조직한다. 따라서 권력관계는 국가나 감옥, 군대처럼 명시적인 제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과 연애, 돌봄과 교육, 노동과 인정처럼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도 권력은 작동한다.

『체인소 맨』에서 이와 같은 권력의 작동을 가장 선명하게 구현하는 인물은 단연 마키마다. 마키마는 덴지를 폭력으로 굴복시키기 전에 먼저 먹이고, 재우고, 고용하며, 그에게 가족이라 부를 만한 관계를 배치한다. 마키마는 덴지의 욕망을 억압하기보다 무엇을 욕망해야 하며, 그 욕망을 누구를 통해 충족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마키마의 지배는 바로 이 돌봄과 욕망의 생산을 통해 성립한다.

마키마의 권력은 덴지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폭력보다는 돌봄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좀비의 악마와 싸운 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덴지에게 마키마는 먼저 다가가 그를 안아주고, 인간인지 악마인지를 묻는다. 덴지가 인간의 언어로 대답하자 마키마는 그를 즉시 제거하지 않고, 자신에게 길러지는 ‘개’가 되어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악마로서 죽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것은 하나의 선택지다. 그러나 덴지에게 주어진 가능성은 이미 마키마에 의해 두 갈래로 제한되어 있다. 복종해 살아남거나, 거부해 죽거나. 마키마는 덴지의 행동을 직접 강제하기보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행위의 장을 먼저 조직한다.

이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마키마가 덴지에게 단지 명령만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키마는 덴지가 가장 결핍되어 있던 포옹과 음식, 잠자리를 함께 제시한다. 마키마의 명령은 “복종하라”는 말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뜻한 아침 식사와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약속이 그 명령을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든다. 덴지에게 마키마는 자신을 이용하는 공안의 상관이기 전에, 처음으로 자신을 사람처럼 대해준 존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키마의 권력은 외부의 강압으로만 남지 않고 덴지 자신의 욕망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곧 덴지가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푸코에게 권력관계가 성립하려면 권력이 작용하는 상대방이 적어도 여러 방식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지닌 주체여야 한다. 상대방에게 어떠한 행동이나 저항의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순간의 작용은 권력관계라기보다 신체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강제에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관계 속의 자유가 평등하고 충분한 자기결정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할 가능성이 형식적으로 남아 있더라도, 누가 선택지를 마련하고 그 선택에 따르는 대가를 결정하는지에 따라 관계는 극도로 비대칭적일 수 있다.

덴지는 마키마와의 첫 만남에서 실제로 대답할 수 있었고,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마키마의 제안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굶주리고 다친 채 사회적 기반도 보호자도 없는 덴지에게 죽음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마키마는 덴지의 의지를 제거하지 않는다. 대신 덴지가 생존을 원한다면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거의 상상할 수 없도록 선택의 조건을 편성한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 작동하는 권력은 덴지에게 선택을 금지하는 힘이 아니다. 오히려 선택하게 하되, 그 선택의 범위와 의미와 결과를 마키마가 미리 규정하는 힘이다. 덴지는 스스로 마키마를 따라가지만, 바로 그 자발성 때문에 복종은 외부에서 강요된 명령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덴지가 자신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내린 선택으로 경험되며, 이후 마키마의 권위가 그의 욕망 안에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된다.

마키마가 덴지의 욕망을 생산한다는 말은 덴지에게 없던 욕망을 무에서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다. 덴지는 마키마를 만나기 전부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했고, 누군가와 함께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어 했으며, 성적인 접촉과 친밀함을 갈망했다. 마키마가 하는 일은 이러한 욕망을 새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덴지에게 이미 존재하던 결핍을 읽어내고 명명한 뒤 그것을 자신의 명령에 복종함으로써만 충족할 수 있는 보상으로 편성하는 것이다.

가슴을 만지고 싶다는 덴지의 욕망은 그 자체로 마키마가 주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키마는 그 욕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고, 단순한 신체적 접촉을 상대를 알고 관계를 맺는 일과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마키마는 덴지에게 욕망의 대상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언어까지 제공한다. 덴지는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욕망이 어떤 형태를 취하고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는 점차 마키마의 언어를 통해 조직된다.

이때 마키마는 단순한 상관이나 연애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마키마는 덴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알아차리고, 그 욕망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언제 어떤 조건에서 충족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자다. 덴지에게 마키마는 명령하는 권력자인 동시에 욕망을 해석하는 권위자가 된다. 복종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외적 선택만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기 위한 내적 선택으로 변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키마의 권력은 양육자의 성질의 형식을 띠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양육자의 성질이란, 생명을 양육하고 배치하며, 무엇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삶인지를 규정하는 통치의 형식에 가깝다. 마키마는 덴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덴지의 필요를 해석할 권리를 독점한다. 덴지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여성과의 접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할 때 그 욕망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은 마키마다. 덴지가 새로운 관계와 삶의 가능성 앞에서 흔들릴 때에도, 그의 판단을 지배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는 것은 마키마가 제시한 삶의 질서다. 제1부에서 덴지의 앞에 반복해서 길을 제시하는 것은 마키마—곧 지배의 악마다.

따라서 마키마는 덴지의 욕망을 억압하는 부모라기보다 욕망을 생산하고 배치하는 부모에 가깝다. 덴지에게 연애하고 싶다는 욕망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키마는 그 욕망들에 순서를 부여하고, 충족 조건을 설정하며, 자신의 명령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한다. 덴지의 욕망은 억압되기보다 복종의 체계 안에서 조직된다.

또한 마키마는 자신의 욕망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부모이기도 하다. 마키마가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덴지가 아니다. 마키마가 욕망하는 것은 덴지가 품고 있는 ‘체인소 맨’, 즉 포치타다. 마키마는 덴지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독립된 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그의 몸과 삶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매개로 사용한다. 이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이 아니라 부모의 결핍과 이상을 완성하기 위한 존재로 취급하는 지배적 양육의 형식과 닮아 있다.

마키마가 만들려 했던 ‘더 나은 세계’ 역시 이러한 양육적 통치와 연결된다. 전쟁과 죽음, 기아처럼 인간에게 해로운 것을 체인소 맨에게 먹여 없애겠다는 계획은 표면적으로는 전 인류를 품고 보호하려는 계획이다. 그러나 그 보호에는 당사자의 동의가 없고, 무엇이 좋은 세계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마키마뿐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모든사람의 욕망과 삶의 차이를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마키마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모두를 보호하려 하지만 누구도 자신과 대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며, 인류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은 개별적인 타자를 향한 사랑이라기보다 자신이 설계한 질서를 향한 욕망에 가깝다. 마키마는 결국 근대적 통치 권력이 양육의 언어와 형상을 빌려 구현된 인물이다.

그러나 마키마가 배치한 관계가 언제나 그녀의 의도대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아키와 파워는 처음에는 덴지를 관리하고 전투에 투입하기 위해 구성된 공안의 팀이자 공동생활 단위였다. 그러나 함께 먹고 자고 싸우는 시간이 쌓이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조직이 부여한 기능을 넘어선다. 덴지에게 아키와 파워는 마키마가 약속한 ‘정상적인 생활’을 구성하는 요소인 동시에, 실제로 사랑하고 상실할 수 있는 비혈연 가족이 된다.

이 점은 권력이 관계를 생산할 수는 있어도 그 관계의 의미를 완전히 독점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키마는 덴지를 길들이기 위해 가족의 형태를 제공했지만, 그 안에서 발생한 애정과 상호의존은 단순한 통치 수단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키마는 덴지를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그 관계를 회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키와 파워를 덴지의 눈앞에서 파괴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질 의지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 마키마의 돌봄은 여기서 그 이면을 드러낸다. 삶을 제공했던 자가 그 삶을 철회할 권리까지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키마가 사라진 뒤에도 덴지를 통치하던 권력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덴지는 이미 ‘체인소 맨’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과 형상으로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키마가 덴지의 외부에서 그의 욕망을 조직한 권력자였다면, 체인소 맨은 덴지가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조직하게 만드는 주체화의 형식이다.

대중이 사랑하는 것은 덴지라는 개인이 아니라 악마를 쓰러뜨리는 영웅 ‘체인소 맨’이다. 마키마 역시 덴지를 보지 않고 그의 안에 있는 ‘체인소 맨’만을 바라본다. 덴지는 반복해서 사랑받지만, 언제나 자신이 아닌 무엇으로 사랑받는다. 그럼에도 ‘체인소 맨’에 대한 환호는 덴지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과 살아갈 이유를 제공한다. 따라서 영웅이라는 정체성은 외부에서 강요되는 역할인 동시에, 덴지가 스스로 원하고 붙잡는 삶의 형식이 된다.

푸코의 관점에서 주체화는 권력이 개인을 외부에서 억압하는 과정에 그치지 않고, 개인이 자신을 특정한 존재로 인식하고 그 정체성에 맞추어 스스로를 통치하게 되는 과정이다. 덴지는 대중의 기대에 따라 체인소 맨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을 직접 전달받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과 인정이 체인소 맨이라는 모습에만 주어질 때, 그는 그 역할을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인다. 외부의 시선은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행동하게 하는 내적인 기준으로 전환된다.

이 때문에 마키마를 쓰러뜨리는 것은 덴지의 완전한 해방이 될 수 없다. 마키마라는 지배자는 제거되었지만, 덴지는 여전히 체인소 맨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며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외적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 영웅이라는 내적 권위가 들어선 것이다. 후지모토 타츠키가 1부 완결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히어로물의 가장 올바른 결말은 히어로를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덴지는 그만둘 수 없을 것이라고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히어로를 그만둔다는 것은 단순히 싸움을 중단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이 욕망하는 자신의 형상과 결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키마를 쓰러뜨리는 일만으로 덴지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키마라는 지배자는 사라졌지만, 그녀가 덴지에게 가르친 욕망의 언어와 체인소 맨이라는 정체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덴지는 체인소 맨으로서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며, 그 시선을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외부에서 명령하던 권력은 사라졌지만, 타인의 기대에 자신을 맞추고 스스로를 체인소 맨으로 통치하게 만드는 내적 권위는 계속 작동한다.

이러한 점에서 『체인소 맨』은 권력을 단지 자유를 억압하는 외부의 악으로 그리지 않는다. 마키마의 지배는 덴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기 때문에 성립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음식과 집, 가족과 욕망, 사랑받을 가능성을 제공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었다. 동시에 마키마가 배치한 아키와 파워와의 관계는 단순한 통치 수단으로 머물지 않고 실제 애정과 상호의존으로 발전한다. 권력은 관계를 조직할 수 있지만,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미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한다. 권력관계 안에는 언제나 지배의 가능성과 함께 그것을 초과하고 다르게 만들 가능성도 남아 있다.

따라서 『체인소 맨』이 던지는 질문은 권력관계 바깥의 순수한 자유가 가능한가에 있지 않다. 인간은 타인의 돌봄과 인정에 의존하고, 그 관계 속에서 욕망과 정체성을 형성한다. 문제는 의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의존을 제공하는 자가 상대의 선택과 이탈 가능성까지 독점하는 순간이다. 마키마는 덴지에게 살아갈 세계를 주었지만, 그 세계 안에서 다른 삶을 선택할 권리는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체인소 맨』은 권위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을 살게 한 욕망과 관계가 동시에 자신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이야기다. 덴지가 마키마를 쓰러뜨리고도 체인소 맨을 그만둘 수 없는 까닭은 그 권력이 단순히 외부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희망,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체인소 맨』에서 ‘히어로를 그만둔다는’ 해방은, 지배자의 제거나 히어로의 중단이라는 방식이 아니라—타인이 욕망하는 자신의 형상, 즉 ‘체인소 맨’이라는 자신을 구성하는 권위와 권력의 흔적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재협상하며 끝내는 결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